[이슈프리즘] 기업 홀로 '반도체 전쟁' 하라는 나라

입력 2024-03-25 17:53   수정 2024-03-26 00:18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를 흔들며 “반도체 패권을 되찾겠다”고 선언한 게 3년 전 이맘때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엔 가지야마 히로시 일본 경제산업상이 ‘반도체산업 기반 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민간사업 지원의 틀을 넘어 국가사업으로 대처하겠다”면서.

미국과 일본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아차’ 싶었는지, 문재인 정부도 그즈음 대책이란 걸 내놨다. 이름하여 ‘K-반도체 전략’. 거창한 제목과 달리 보조금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이 시설투자비 등에 대한 세액공제를 ‘찔끔’(대기업 기준 3%→6%, 이후 15%로 상향) 올려주는 정도였다.

대책 중에는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들여 짓는 용인 클러스터 가동에 필요한 전력 인프라 구축비의 25%를 국비로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전기료를 깎아준다는 것도 아니고, 마땅히 나라가 깔아줘야 할 전력망 구축비를 일부 대준다는 게 그렇게 생색낼 일인가 싶었지만, 그나마도 없던 걸 해준다니 SK로선 황송할 따름이었겠다.

한·미·일 세 나라의 ‘반도체 굴기’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이듬해 드러났다.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시설을 짓는 기업에 527억달러(약 70조원) 규모의 보조금 등을 주는 ‘반도체 지원법’을 내놓으며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을 빨아들였다. 얼마 전 나온 ‘인텔 200억달러, 삼성 60억달러, TSMC 50억달러 보조금 지급’ 기사의 근거가 된 바로 그 법이다.

같은 해 일본은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대만 TSMC에 건설비의 40%에 해당하는 4760억엔(약 4조3000억원)을 건넸다. 일본 정부의 총력 지원은 덤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24시간 공사’에 ‘쾌속 인허가’가 더해지자 5년이 지나도록 1공장 착공도 못 한 SK하이닉스와 달리 TSMC 1공장은 공사 시작 2년 만인 지난달 문을 열었다.

한국만 딴 세상이었다. 약속대로라면 용인 클러스터 전력망 구축비 6897억원의 25%인 1724억원을 정부가 내야 하지만, 실제 건넨 돈은 290억원뿐이었다. ‘300억원이 넘는 나랏돈을 쓰려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국가재정법 38조 때문이란다.

하루가 아쉬운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언제 될지도 모르는 예타 통과를 마냥 기다릴 수 없던 터. ‘예타 면제’란 해법이 있지만 정부도, 정치권의 그 누구도 꺼내 들지 않았다. 대체 몇 명이나 탈지 가늠도 안 되는 달빛고속철도와 대구경북(TK)신공항 건립에 나랏돈 수십조원을 들인 땐 ‘전가의 보도’처럼 쓴 카드지만, 표도 안 되고 ‘대기업 특혜’란 프레임에도 걸린 용인 프로젝트에 쓰기엔 아까웠던 모양이다. SK하이닉스는 그렇게 전력망 구축비의 절반 이상을 회사 금고에서 꺼내 썼다.

다시 2년이 지난 2024년. ‘칩 워’는 더 세지고 커졌다. 미국은 더 많은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2차 반도체 지원법’을 만지작거리고 있고, 이에 질세라 유럽연합(62조원)과 인도(13조원)도 돈을 싸 들고 참전을 선언했다. 일본은 TSMC에 구마모토 2공장 건립 대가로 1차 때보다 훨씬 많은 7300억엔을 건네는 동시에 자국 반도체 기업 육성을 위해 라피더스에도 9200억엔을 지급하기로 했다. 중국도 같은 이유로 36조원 반도체 펀드를 최근 만들었다.

주요국 중 반도체 보조금을 주지 않는 나라는 정작 반도체로 먹고사는 한국뿐이다. 전기와 물을 가장 많이 쓰는 업종이 반도체인데, 전력망도 기업이 깔아야 하고 수도값에 더해 ‘물 이용 부담금’까지 물리는 게 우리나라다. 감독도 스태프도 없이 오직 선수만 죽어라 뛰고 있는 대한민국은 ‘국가 대항전’이 된 반도체 전쟁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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